태풍, 소나기까지는 아니여도 비바람이 불던 저녁.

그 날은 날 제외한 가족들이 지방으로 내려갔고 일 년에 몇 번 없는 자유시간이였다.

그런 날은 엄마도 밥 하기 귀찮아, 카드나 현금을 주고 먹고 싶은 걸 사먹으라고 했었고 내 사비를 약간 더 추가하면 엄청난 사치를 부릴 수도 있었다.

특히 나는 밤 12시~ 새벽 1시 사이에 먹는걸 좋아했다.
닭발, 곱창, 막창, 삼겹살 등등.. 그 시각에 영화나 예능을 보며 이런 맛있는 음식을 "홀로" 먹는건 정말 그 시절 나에겐 너무나도 황홀한 시간이였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밤 12시 쯔음에 배달을 시켰다.

아마 내가 기억하기론 그 날 메뉴는 김치찌개였고, 거기에 사비를 더해서 닭똥집까지 시킨 호사스러운 밤이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배달이 1시간 반이 넘도록 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성격이 워낙 소심해서 웬만하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성격이였는데 배도 워낙 고프고 정도가 심할 정도로 늦기에 목소리 톤을 거칠고 위엄있는 톤으로 낮추고, 배달을 시킨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까 김치찌개 시킨 사람인데, 거 배달이 너무 늦는거 아니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못한 대답이였다.

"죄송..합니다. 비가 생각보다 많이 와, 배달원이 배달 도중 사고나서 응급실에 갔습니다. 빠르게 다시 요리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난 덜컥 겁이 났다.

나 때문에 사고가 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정도로 다쳤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누군지 모를 얼굴을 한 사람이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머리에 피가 범벅인 체로 비바람 속에서 넘어져 있었다.

늦은 새벽 결국 김치찌개는 도착했지만, 그 새빨간 김치찌개는 계속 그 배달원의 피를 연상시켰고, 거부감을 느낀 나는 김치찌개 먹기를 망설였다.


알 수 없는 망설임 속에서 기윽고 나는 김치찌개를 한 숟갈 떠서 내 입속에 넣었고, 무심결에 입에서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이 집 김치찌개 잘하네~"

이름 모를 배달원, 나 때문에 사고난 배달원을 뒤로 한 체 그 황홀한 김치찌개의 맛에 매료되었던 그 날의 나를 상기시킬 때마다, 지금 나의 가슴 한 쪽이 애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