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x년 어느 봄날, 나는 사람을 한명 죽였다.
죽여 놓고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참 웃긴 일이지만 불쌍한 사람이었다.

성격이 괴팍하여 가까이 지내는 주변 사람 하나 없고, 변변찮은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집에서 보내주는 생활비로 흥청망청 놀고먹는 그런 한심한 사람.

나는 그런 그의 유일한 이해자였다. 성격이 괴팍한 그가 짜증을 내며 주변인을 물릴 적에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어쩔 수 없다며 속상해하지 말라며 그를 달래주었고,

게으른 그가 그저 놀고먹으며 시간을 보낼 때에는 사회생활이 두려워서 쉬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고 나도 그렇다고 그를 격려하였다.

이렇게 주변의 날카로운 시선과는 달리 따듯한 온기로 자신을 대해준 나를 그는 썩 괜찮게 생각한 것 같다.

뭔가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반드시 나에게 전해온 것이다. 나 말고는 같이 생각해줄 사람이 없다나 뭐라나.
초라한 그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도움을 요청 받을 때마다 나는 최선의 대답으로 그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이러한 내가 그를 죽이고자 마음먹게 된 것은 이주 사소한 계기에서였다.
평소처럼 그를 격려하던 어느 날 그가 다른 사람에게 하던 괴팍한 반응을 나에게 내비친 것이다.
그 빌어먹을 끼워 맞추기는 제발 좀 그만 하시지! 아주 구역질이 나올 정도야!

변덕이 심한 그의 성격을 알고 있었고 평소와 같이 흘려 넘길 수도 있었지만 그 날은 아니었다.
그의 말에서 전해져오는 추악한 감정이 내 가슴 속 깊숙이 숨겨져 있던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실망, 분노, 배신감 등 오만가지 감정이 휘몰아치는 가운데서도 그 무언가는 아주 선명하게. 손에 쥐는 듯이 느낄 수 있었다.

모멸감. 그것은 지독한 혐오의 감정이었다.
너 따위가 감히? 어째서? 내가 너에게 해준 것이 얼마인데...?
그렇다. 나또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마음 속 한구석으로는 그의 한심한 행태를 비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자 혼란스러운 감정이 놀랍도록 냉정해졌다. 그를 어르고 달래며 나를 지탱해온 어떤 것이 산산조각 난 것이 느껴졌다.

그때 비로소 나는 위선의 가면을 벗어내고 결심할 수 있었다. 죽이자.
죽는다 해도 슬픔에 울어줄 이 하나 없을 쓰레기 같은 그를 죽여 버리자.
결심을 하고나자 그간의 있었던 그와의 일들이 거짓말 이었던 것처럼 계획이 진행되어 갔다.

칼로 찌를까? 아니야 피 때문에 방이 더러워져.
약 같은 걸 쓰면 어떨까? 아니야 사람을 죽일만한 약을 그렇게 쉽게 먹지는 못해.
그래 목을 조르는 거야 밧줄로 목이 졸리면 아무 저항도 못하고 고통 속에서 죽게 되겠지.

계획을 완성한 나는 곧장 그를 죽였다.
햇빛 한줄기 들어오기 힘든 그의 반지하 자취방에서 어설프게 천장에 매단 밧줄에 목을 걸었다.

그래! 나는 나를 죽여 버렸다. 불쌍하고 한심한. 그리고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자기 위로로 달래 오던 나는 너무 지쳐버렸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죽인다.

목을 걸기위해 올려놓은 상자더미를 걷어찬 발치가 허공을 허우적대고 시야는 붉게 흐려진다.
본능에 의해 숨을 갈구하는 몸은 목을 조르는 밧줄을 풀기위해서 피가 나도록 목을 긁어 대고 있었지만
나일론 밧줄을 엮은 것이 고작 손으로 풀릴 리도 없었다.

피가 몰릴 대로 몰려 지끈거리는 눈에서는 어째선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코와 입에서도 물이 질질 나와서 무엇이 콧물인지 침인지 조차 구분할 수 없었지만
나는 분명 여지껏 겪어본 적 없을 만큼 정신없이 울고 있었다.

그 순간 밧줄을 매달아 두었던 낡은 천장이 몸의 무게를 버티지 못했는지 무너져 내렸다.
꼴사납게 바닥을 구르며 느슨해진 밧줄을 정신없이 벗어내고 먼지가 잔뜩 섞인 숨을 잔뜩 들이켰다.
흐려지던 시야가 노랗게 핑 돌았다.

201x년 어느 봄날, 나는 나를 죽였다.
죽으려 해놓고 살아 돌아온 것도 참 웃긴 일이지만 살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좀 더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살아보고 싶어 눈물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