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이름 석자를 안다면
날 구하러 와주세요
내가 있는 곳은
아무리 밝은 빛이라도 닿지 않는
어찌할 수 없는 심해
당부할 게 있다면
절대로 이 곳에 익숙해지지 마세요
당신도 누군갈 간절히 원하게 될 테니

2
뭐든 간에 어둡고 깊은 곳은
꿈틀거리는 것들이 널 사로잡는다
정체는 다양하지
노인의 담배라던가
노인의 교통카드라던가
대개 이 곳엔 노인들이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너의 팔을 꽉 잡는다
그럴 때 너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3
가령 네모난 공을 굴린다고 해보자
동그란 공처럼, 마치 구르는게
천명인 것처럼 구르는게
이 네모난 공은 기가 찬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모서리로 협박하는 것 밖엔 없다
표정을 아주 찡그리면서

4
이리 와요, 어서 와요
겨우 저에게 오셨군요
제가 있는 곳은 심해의 끝자락
당신의 눈이 보여요
당신 눈은 다 검게 변해버렸어요
맞죠?
이 곳엔 단 한 줄기의 빛도
들어올 수 없어요, 단 한 줄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