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그렇게 우리의 동거 생활은 계속 되었다. 선미는 평범하게 학교에 다녔고, 나는 그동안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는 저번처럼 둘이서 놀러 나갈 때도 있었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였고 대부분은 둘이서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대신 일단 외출을 하면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집에 있을 때는 DVD를 잔뜩 빌려다 놓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쌓아두고 함께 나란히 앉아 읽을 때가 많았다. 다른 일을 할 때도 있었지만, 무얼 하든 간에 집안일을 할 때를 제외하면 둘이 붙어 지낼 때가 대부분이었다.

선미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한 번도 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이 없었다. 전화 통화를 하는 것도 볼 수가 없다. 알고 보니 부모님의 생존 여부와는 상관없이 선미는 핸드폰을 계속 가지고 다녔는데, 누군가와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는 일도 없는 것 같았다. 아마 내가 자퇴한 것처럼 이 애에게도 어떤 커다란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더욱 나에게 의존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선미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편하게 빈둥거리면서 인생을 즐기고 있었지만, 막상 무기한의 자유가 주어지니 알 수 없는 불안한 감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또래의 다른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무언가를 하면서 살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은 걸까? 하는 기묘한 불안감 같은 것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것이다.

사고에 대한 보험금이라는 것도 언젠가는 바닥날 거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언제까지나 이렇게 지낼 수도 없을 것이다. 일단 급한 대로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만약 취업을 해야 한다면 고등학교 중퇴보다 졸업한 쪽이 더 인정받겠지. 나중에 대학에 가기로 한다면 졸업 자격을 따 놓는 편이 더 유리할 테고 말이다. 그렇게 공부하라는 소리를 귀가 아프게 들어왔어도 집에 오면 교과서 들춰보는 일이 없다시피 했는데, 막상 자퇴하고 나자 그제야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도 기묘한 일이다. 공부라고 해도 선미가 사용하는 참고서를 몇 시간 정도 들여다보며 읽고 푸는 것이 전부지만,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하는 터라 그럭저럭 재미있는 편이다. 막상 선미는 내가 공부를 하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 애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책을 덮는다. 어차피 그 이상은 지루해서라도 못하겠지만.

어쨌든 그런 생활이다 보니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선미랑 같이 외출을 하는 것 말고는 딱히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다. 인간이란 생각보다 좁은 서식지에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놀라는 중이다. 그렇다고 계속 방-거실-화장실만 오가면 운동 부족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실내 운동도 매일 조금씩 하고 있다.

돈에 대해서 또 할 말이 있는데, 사실 난 이 집의 재산 현황이나 금전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다. 그야, '과거의 기억'이 없는 지금의 나로서는 일부러 알아보려 하지 않는 이상 알 길이 없다. 그래도 궁금하긴 한지라 선미에게 살짝 물어봐도 '주인님께서는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다 알아서 해 드릴 테니까.'라며 입을 다물게 한다. 분위기로 봐선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것 같으니, 어쩌면 '과거의 나'도 그런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데이트 비용이라던가 식비 같은 것을 생각해보면 결코 사치를 하는 편은 아니긴 해도, 잔고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걱정이 될 때가 있다. 선미 몰래 집안을 뒤져봐서 확인해 보는 방법도 있지만, 선미를 못 믿는 것 같기도 해서 실행으로 옮기진 않았다. 아직까지는.

그렇다고 선미도 적당히 살아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졸업하고 나면 전문대학에 들어가서 대학 졸업 후에 바로 관련 직종으로 취업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지망 학교도 정해놓고 진로도 결정한 것으로 봐서 자기 나름대로 미래에 대한 계획은 확실하게 세워놓은 듯하다.

"주인님은 제가 평생을 모실 테니 생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너도 언젠가는 결혼을 해야 할 테고…."

"그런 건 하지 않아요. 절대로."

선미는 그 즉시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니까 주인님도 결혼 같은 것을 해선 안 돼요."

"…그래."

아마도 나 역시 직접 이런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제3자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만 들었더라면, 이 애의 마음에 대해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같이 살고 있는 지금은 비록 선미의 생각에 동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다.

선미가 나에게 보이는 집착은 일종의 의존증일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이 애의 행동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도망가서는 안 된다. 모두 내가 초래한 일이니까. 이 애는 내 욕심의 피해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책임을 지고 이 아이의 옆에 있어야 하겠지.

"선미야."

"네?"

"이 쪽으로 올래?"

"…네."

선미는 조금 놀라면서도 안기듯이 내 옆에 달라붙는다.

앞으로 우리 둘이 어떤 관계가 될지 잘 모르겠다. 선미가 원하는 대로 남녀의 관계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내가 바라던 대로 둘도 없이 사이좋은 남매의 관계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되든 간에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내가 이 애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이라는 것이다.

"사랑해요. 주인님. 영원히 제 곁에 있어주세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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