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점프 후에 늘 찾아왔던 극심한 피곤함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 이후로 어떻게 된 거냐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점점 몸이 떨려왔다. 원래의 과거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만약 부모님께 들켰더라면 커다란 문제로 터졌을 것이고, 가정도 풍비박산 났을 텐데, 어제 내가 있었던 우리 집은 너무나도 화목한 가정이었으니까.

결국, 내 판단은 완벽하게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젠장. 침착하자. 사태 파악을 하기도 전에 겁부터 먹으면 나중에 어떻게 하려는 거냐.

일단 시계부터 바라본다. 8시 30분이었다. 뭐라고? 8시 30분!? 이대로라면 100% 지각이잖아!?

아…맞아. 오늘은 일요일이다. 괜히 깜짝 놀랐잖아.

요 며칠 간 계속 선미가 깨워왔기 때문에 스스로 눈을 뜬 것도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았다. …솔직히 일어나고 싶지가 않은 상황이다. 일단 방 안은 지금까지와 변함이 없는 것 같긴 한데. 지금 거실로 나가면 어떤 미래가 펼쳐져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하지만, 나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언제까지나 질질 끌 수는 없는 일이지. 심호흡을 한 번 한다. 좋아. 나가자. 나는 방문을 홱 열어젖히고 거실로 발을 내딛는다.

조용했다. 아무도 없었다. 평소의 일요일 이 시간이라면 부모님 두 분 중 최소한 한 분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시는 게 보통이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TV 자체가 꺼져 있었다. 일요일에는 대부분 하루 종일 켜놨었는데….

어쩐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극단적인 상황이라도 일어난 건 아니겠지. 천천히 부엌으로 가 보았다. 엄마는 어디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고, 선미 혼자서 앞치마를 두르고 무언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어제처럼 길었는데, 요리하는 데 방해되기 때문인지 가지런히 뒤로 모아 묶은 상태였다. 선미는 내가 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보더니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일어나셨어요, 주인님?"

뭐, 뭐라고? 주인님이라고?

오라버니라는 표현도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지는 호칭이었지만, 이건 어색한 것을 넘어서 남매 사이에 사용될 수 없는 표현이잖아? 왜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거지?

그 몇 년 동안 무언가 엄청난 변화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대체 그 이후로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젠장. 모르겠다. 내가 점프를 했을 때, 아까 그 상황에서 어떤 조처를 취했어야 어제와 같은 세계가 됐을까.

일단 침착하자. 당황해봤자 변하는 것은 없으니까. 우선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수 없이 떠오르는 혼란과 걱정들을 억누르며 제일 중요한 것부터 묻기로 했다.

"그래….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부엌으로 오는 도중 안방도 흘끔 들여다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두 분 모두 외출하시는 일은 거의 없는 일인데….

선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내게 되물었다.

"부모님이라니…무슨 소리에요? 또 이상한 꿈을 꾸신 건가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선미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알 수 없는 불안한 예감이 밀려들어 왔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지가 언제인데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뭐라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과 함께 현기증이 찾아왔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어제까지만 해도 정정하셨던 그 두 분이? 어째서!?

"왜, 왜 돌아가신 건데? 언제?"

"가엾게도…."

선미는 얼른 대답하지 않았다. 그 애는 가스레인지에서 떨어져서 앞치마를 벗어 의자에 걸어 놓고는 영문을 모르는 내게 천천히 다가와서 마치 어린 아이를 달래듯이 나를 부드러운 손길로 껴안는 것이었다.

"불쌍한 주인님. 슬픈 과거는 이제 묻어버리세요."

아니…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여러 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라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기 때문에, 진정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대답부터 해줘. 부모님께서는 왜, 그리고 언제 돌아가신 거야?"

그제야 선미는 한숨을 푹 내쉬며 어두운 표정으로 띄엄띄엄 말하기 시작했다.

"…재작년이었어요. 두 분이서 차를 타고 외출하시던 도중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선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말꼬리를 흐린다.

말도 안 돼!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내가 과거를 바꾼 부분과 두 분이 돌아가신 일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느냔 말이야! 애초에 내가 살았던 원래 세계에선 교통사고 같은 것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야, 아주 사소한 일이 전혀 다른 일의 계기가 되고. 그것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커다란 사건으로 다가오는 일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터무니없는 일이다.

뭔가…분명히 어딘가 크게 잘 못 됐어.

내 속 사정을 알 리가 없는 선미의 눈에는 마치 내가 정신 착란을 일으킨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주인님. 제가 옆에 있으니까 제발 그런 표정을 짓지 말아 주세요. 이제 우리들만 남았는데…주인님이 약해지시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젠장…. 그게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고! 이해되지 않는 현실에 괜히 아무것도 모르는 선미에게 짜증을 내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야. 침착하자. 여차하면 다시 과거를 돌리면 돼. 분명히 이건 점프 도중에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걸 거야.

어차피 점프라는 건 하루에 한 번밖에 할 수 없으니, 일단 저녁까지는 이대로 지내보자. 점프를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 대해서는 이해를 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체 뭐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리고 이 애가 왜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지 등…. 난 지금 이 현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