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월이 그릇을 씻고 부엌에서 나왔다.

"으아아앙."

"이게 무슨소리지?"

집안에는 삼순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연월은 삼순이가 있는 마루로 갔다.

"누나. 울지마."

"으아아앙."

마루에는 한돌이와 두돌이가 울고있는 삼순이를 달래고 있었다. 하지만 삼순이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왜 그러시는 것입니까?"

"우리도 모르겠어. 삼순이 누나가 갑자기 울기시작했어."

연월은 울고있는 삼순을 달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유를 모른체 달랠수는 없었다.

"혹시, 울기 전 무슨 얘기를 나누지 않았습니까?"

"별거아닌데... 두돌이가 우리 사부님 신붓감으로 연월이 누나가 딱이라고 했어."

"내... 내가 언제그랬어!"

"했잖아."

한돌이의 얘기를 들은 연월은 삼순이가 우는 이유가 무엇때문인지 짐작이 되었다. 연월은 울고있는 삼순의 곁으로 다가갔다.

"삼순님. 울지마십시요."

삼순은 연월이 다가오자 몸을 휙 돌리더니 더 크게 울었다.

"으아아앙!"

"도사님 때문에 울고 계시는 게지요?"

"으아아앙!"

"도사님께서는 오랜만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아마, 우는소리를 듣는다면 다시 뛰쳐 나가실지도 모릅니다."

연월의 말에 삼순은 울음을 뚝 그쳤다.

"잘하셨습니다."

"치..."

울음을 멈춘 삼순이었지만 아직 연월을 향해 등을 돌린체 토라져 있었다.

"삼순님, 저와 도사님은 아무런 사이가 아닙니다."

"흥. 거짓말."

"정말입니다."

"그럼, 도사님이 왜 언니를 데려 왔어요?"

"그것은..."

연월은 부채도사가 자신을 붙잡아 끌고왔다고 말하면, 또다시 울것만같아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저 벗이라고 해두지요."

"벗? 남녀사이에 벗이 어딨어요."

"믿으십시요. 저와 도사님은 벗일뿐입니다. 또한, 제게는 좋아하는 이가 따로 있습니다."

"정말... 정말... 정말이에요?"

"정말. 정말. 정말입니다."

토라져있던 삼순은 어느새 고개를 돌려 연월을 힐끔 바라보았다. 연월은 환하게 웃고있었다. 삼순의 눈은 또다시 글썽이기 시작했다.

"언니!"

삼순은 연월에게 안기어 울기 시작했다.

----------------------------------------------------------------------------------------------------
"앳취!"

지난 날, 동섭에게 삿갓을 뺏기어 비를 홀딱 맞은 대혁은 감기에 걸렸다.

"앳취!"

"시끄럽구나."

하루종일 재채기를 하고있는 대혁에게 동섭이 말했다.

"네놈때문에 홀딱젖어 이리 된것이거늘, 시끄러워?"

대혁은 마음같아서 동섭의 방망이를 빼앗아 힘껏 두들겨 주고 싶었지만, 감기에 걸린터라 걷는것만 해도 힘겨웠다.

"이거 어디선가 조금 쉬었다가 가야겠구나."

대혁이 큰 바위옆에 기대었다. 동섭은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대혁을 쳐다보았다.

"이 목걸이가 무엇인지 아느냐?"

동섭이 자신의 목에 걸고있는 목걸이를 보여주었다.

"목걸이가 목걸이지. 무엇이란 말이냐? 잠깐만, 어디서 본듯한데..."

대혁은 동섭이 보여주는 목걸이와 똑같은 목걸이를 본적이 있었다. 바로 연월이 차고있었던 목걸이였다.

"그렇지! 연월이도 그 목걸이를 차고있었다."

"잘 아는구나. 이 목걸이는 아가씨도 차고있다."

"옳아. 도깨비들이 차는 목걸이 인가보구나."

"틀렸다. 이 목걸이는 태범님께서 특별히 만든것이다."

"사내자식이 목걸이나 만들다니, 참으로 별나다."

"쯧쯧. 인간들은 어찌 겉만보고 판단하는 것이냐? 이것은 평범한 목걸이가 아니다. 이 목걸이를 차면 태범님과 말을 주고받을수 있다."

동섭이 목걸이의 성능을 설명하자 대혁은 제법 감탄하는 얼굴로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헌데, 왜 내게 목걸이를 보여주는 것이냐?"

"네놈이 여유를 부리는듯 하여, 긴장감을 줘야할듯 싶기 때문이다."

"긴장감?"

동섭은 목걸이를 잡아 태범을 불렀다.

"태범님. 들리십니까? 동섭입니다."

대혁은 목걸이를 잡고 말을하고있는 동섭이 신기해 보였다.

"예. 아직 찾지못했습니다. 태범님 께서는 어떻습니까?"

대혁의 눈에는 동섭은 아마도 연월의 얘기를 하고있는듯 했다. 하지만 동섭은 태범과 얘기하고 있지않았다. 연기를 하고있던 것이다.

"찾으셨단 말씀이십니까?"

대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버... 벌써? 그럴리 없는데..."

"알겠습니다. 곧 뒤따라 가겠습니다."

동섭이 목걸이에서 손을 놓았다.

"그놈이 벌써 연월이를 찾은것이냐?"

동섭은 말없이 걸었다. 대혁은 뒤따르겠다고 하던 동섭의 말이 떠올랐다.

"빌어먹을... 다 틀렸구나."

대혁이 풀썩 주저 앉았다. 연월을 찾을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먼저 앞서고 있는 태범이 이리도 빨리 연월을 찾을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누가 찾았다고 말하였느냐?"

"방금 네가 그러지 않았느냐?"

"네놈을 속이기 위해 흉내한번 낸것 뿐이다. 아직 태범님 께서는 아가씨를 찾지 못하였다."

"뭐? 그럼 장난이었단 말이냐?"

대혁이 벌떡 일어나 동섭에게 화를 내려했다.

"옳아. 서둘러 연월이를 찾지 않으니 골탕한번 먹어봐라. 이거구나."

"잘 알아챘구나. 내가 서둘러 아가씨를 찾으라 하지 않느냐? 네놈만 아가씨를 찾는것이 아니다. 태범님도 아가씨를 찾고있다. 네놈이 천천히 움직이든, 빨리 움직이든, 태범님은 그에 상관없이 움직인다. 지금 이순간도 아가씨를 찾기위해 한걸음씩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다. 네놈은 아가씨를 태범님께 뺏겨도 좋은것이냐?"

동섭의 일리있는 말에 대혁은 화를 낼수 없었다.

"너는 도깨비인데 내 편을 들려고 하는구나."

"네 편이아니라 아가씨의 편을드는것이다."

"연월이의 편?"

"그림자 도깨비로 아가씨의 곁을 지킨 세월동안, 아가씨가 가장 즐거워 했던 시간은 바로 네놈과 함께 있을때였다. 나는 아가씨께 그 시간을 돌려주고싶을 뿐이다."

대혁은 동섭의 깊은 뜻에 감동을 받았다.

"잠깐, 그리 연월이를 나와 붙여주고 싶으면, 네가 앞서가서 연월이를 찾으면 되지 않느냐?"

"그리하면, 내게 떡이라도 떨어지는것이냐? 아가씨가 기디다리고 있다. 서둘러 걷거라."

혼자만 고생할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혁은 동섭에게서 받은 감동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좌의정의 집. 좌의정은 부채도사에 대해 의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두가지 경우가 있다. 정말 찾지못했거나, 혹은 찾았으나 숨기는것. 필시 둘중 하나일 것이다."

두가지라고 말했으나 사실 좌의정의 마음은 이미 후자에 가까웠다.

"대감. 무당을 불러왔습니다."

"옳아. 드디어 도착했구나. 들라하게."

방문이 열리고 요상한 복장을 한 무당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대감."

"거두절미하고 용건만 말하겠네. 자네, 사람이 어딨는지 알수있나?"

"물론이지요. 대감. 제가 맘만먹으면 집나간 개까지 찾아낼수 있는 사람입니다."

좌의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좌으정은 상아래에서 종이한장을 꺼내어 올렸다. 종이에는 연월이가 그려져있었다.

"바로 이 여인이네. 이 여인이 어딨는지 알수있는겐가?"

"알수는 있으나... 지금은 곤란합니다."

"무슨소리인가?"

무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배를 감싸안았다.

"요 며칠간 제대로된 밥한끼 먹어보지 못한터라... 신력이 약해져 제 힘을 발휘할수 없습니다."

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좌의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품속에서 작은 금거북을 꺼내었다.

"이거면 신력을 되찾을수 있겠느냐?"

"예. 대감. 지금 찾아보겠습니다."

무당은 방울을 들더니 좌우로 번갈아가면서 연월이의 그림 앞에서 흔들었다..

"보인다... 보인다... 보인다..."

좌의정은 시끄러운 방울소리와 중얼거리는 말소리때문에 무당의 뺨을 치고싶었지만 금거북까지 주었기에
참고 기다렸다.

"보인다... 보인다... 보였다!"

"보였다? 찾은것이냐?"

무당은 한숨을 내쉬며 방울을 품속으로 넣었다.

"예. 대감. 태어나 이리 아름다운 여인은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얼굴이 예쁘다는것쯤은 알고있다."

"헌데, 대감. 이 여인이 왠 사내와 같이 있었습니다."

"뭐라? 사내라 하였느냐?

"예. 한 집에 같이있는 사내인데, 손에는 부채를 들고있습니다."

"부채?"

좌의정은 무당의 말을 통해 연월이와 같이있는 사내가 부채도사임을 짐작했다.

"부채도사놈... 무슨 속셈인 것이냐?"
----------------------------------------------------------------------------------------------------
"누나. 움직이지마."

코를 긁던 연월은 한돌이의 말에 다시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앉아야만 했다. 한돌이는 붓을 들더니 화쟁이마냥 연월의 앞에 붓을대어 흉내내었다.

"좋아. 시작한다."

한돌이는 붓에 먹을 묻히더니 새하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연월은 한돌의 부탁대로 가만히 앉아있어야만 했다. 한돌이야 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연월은 가만히 있자니 졸립기 시작했다.

"아이 참. 움직이지 마라니까."

연월이 졸음 때문에 고개를 조금이라도 숙이면 한돌이 깨웠다. 그렇게 수차례 반복한 끝에 한돌이의 입에서 기다리던 말이 나왔다.

"다 그렸다!"

"다 그리신 것입니까?"

연월은 반쯤 감은눈으로 한돌을 바라보았다. 한돌은 붓을 내려놓고 연월을 그린 그림을 들어 연월에게 다가갔다.

"자. 이게 내 솜씨야."

연월은 눈을 한번 비비고 한돌이가 건낸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림을 본 연월이의 눈은 휘둥그레 졌다. 도저히 어린아이가 그렸다고는 볼수 없을만큼 뛰어난 그림솜씨 였기 때문이다.

"어머나... 이게 정말 한돌님께서 그린 것입니까?"

"당연하지!"

연월은 믿을수 없다는듯이 자신이 그려져있는 그림을 계속 보았다. 이때, 삼순이 사과를 깍아 들고왔다.

"한돌이가 다른건 몰라도, 그림 하나는 잘그려요."

"그렇지. 아니, 뭐? 나는 다른것도 다 잘해."

"감사합니다.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려주실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히히."

한돌은 연월의 칭찬에 입이 귀에 걸렸다. 그리고, 방안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바로 부채도사였다. 부채도사는 한돌이에게 사과를 먹여주는 연월이의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사부님. 뭐하십니까?"

문구멍으로 몰래 밖을 보고있던 부채도사의 눈에 두돌이의 얼굴이 갑작스레 나타났다. 부채도사는 놀라 기겁했다.

"무... 무엇을하다니. 잠깐 서책을 읽고있었다."

"밖을 보고있지 않으셨습니까?"

"하하하. 두돌이 네가 뭔가 잘못먹은것 같구나. 헛것을 다보구. 낮잠이라도 자거라."

부채도사는 어색한 웃음을 지은뒤 문앞에서 냉큼 떨어졌다.

"... 어째서 자꾸 연월이를 보고있는게냐?"

사실, 부채도사는 자신도 모르게 연월이의 소리가 들리면 문구멍으로 연월이를 보고있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애써보았지만 자꾸 시선은 연월에게 향했다.

"비는 그쳤다. 이제 다시 연월이를 좌의정에게 데려가야한다. 헌데, 어째서 방에 틀어박혀 나가지 않는것이냐?"

이미 부채도사가 좌의정에게 돌아가야 할 때가 훨씬지났다. 더이상 시간이 흐를수록 부채도사는 의심만 살것이 뻔했다.

"연월이를 데려가면..."

부채도사가 연월이를 데려가면 연월이는 목숨을 잃게된다. 그 사실이 자꾸만 부채도사를 방안에 틀어박히게 만들었다.

"빌어먹을. 이래서는 아니된다. 어차피 언젠가는 데려가야할 터, 늦게갈수록 내게 득될것은 하나도 없다."

부채도사는 굳은 마음을 먹고 방문을 열어 나왔다.

"나오셨습니까?"

문을 여니 마루에서는 아이들과 놀고있던 연월이 반겨주었다. 부채도사는 연월을 향해 다가갔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그렇다."

"말씀 하십시요."

부채도사는 이제 그만 연월을 다시 끌고가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부님, 왜 그러세요?"

연월의 앞에서 말을 꺼내지 못하고있는 부채도사에게 삼순이 물었다. 삼순뿐만 아니라 한돌이, 두돌이도 궁금하다는 얼굴로 부채도사를 바라보았다. 부채도사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 잠시 나갔다 올것이다."

부채도사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아이들은 별 일도아닌것을 뜸들이며 말하자 김이 빠졌다. 하지만 연월은 부채도사의 말뜻을 이해했다. 부채도사가 문을향해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연월은 자리에서 일어나 신을신고 따라나섰다.

"너는 왜 따라오는것이냐?"

신을 신고 자신의 뒤를 따라오기 시작하는 연월에게 부채도사가 물었다. 연월은 부채도사에게 다가가 작은 귓속말로 말하였다.

"비가 그쳤으니 다시 끌고가시는것이 아닙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것이냐? 잠시 나갔다 온다하지 않았느냐? 들어가 있거라. 네가 따라오지 않아도 알아서 끌고갈것이다."

연월은 뜻밖이라는 얼굴이었다.

"... 알겠습니다. 허면, 잘 다녀오십시요."

"알겠다."

부채도사가 문을열어 밖으로 나섰다. 집에서 나온 부채도사는 몇걸음 걷더니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아무도 따라나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알아서 따라온다 하였는데, 어찌 다시 들여보낸것이냐?"

부채도사는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알아서 따라오는 연월을 들여보낸 자신을 원망했다.

"아니다. 필시 내가 이런선택을 한것은 하늘의 뜻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저 아이는 도망치지 않는다. 좌의정도 지금까지
손놓고 날 기다리지는 않았을터, 꿍꿍이가 있을것이다. 그것을 알아보아야 한다."

부채도사는 연월을 끌고가기 전에 혼자 좌의정의 집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몇걸음 걷던 부채도사는 또다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잘 다녀오십시요라..."

연월의 인사를 떠올리던 부채도사는 어느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