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고립시키고 수많은 괴물들을 유인하고 모두를 위험에 빠트린 행동이 악의가 아니라는 것인가?

“네가 생각하는 선의라는 게 괴물 녀석들을 우리 쪽에 몰아넣는 일이냐?”

녀석은 약간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곧 평소의 모습을 찾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어째서인지 모든 괴물들이 시청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어요. 매일 옥상에서 녀석들의 행방을 관찰하기 때문에 잘 알죠. 녀석들이 모이는 곳을 지켜보던 중 낯선 차량이 시청 앞에 세워진 것을 발견했고, 많은 괴물들을 처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당신들이 자는 틈을 타 입구를 막는 수밖에 없었어요.”

“뭐? 그게 정말 안전한 거냐? 그 덕에 은혜는 어떻게 되고? 모두 죽을 뻔 했다고!”

“믿어주세요. 우리는 정말 어떠한 악의도 갖지 않았어요. 그저 당신들을 도우려고 했을 뿐이에요.”

녀석을 가만히 바라봤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하자. 왜 괴물들이 시청 쪽으로 몰려들었을까. 남자가 있기 때문에? 은혜가? 이동하는 경로에 남은 미세한 체취로 쫓아온 건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남자가 곁에 있기 때문에 은혜의 체취가 완전히 노출되지는 않았을 거야. 게다가 괴물들은 우리가 알던 괴물들과는 전혀 다른 허약한 놈들이었어. 그럼 대체 뭐지?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 거지?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해. 은혜를 데리고..

“알았어. 믿지. 그럼 나와 같이 있던 여자아이는 어디 있지?”

“아래층에 있어요.”

“안내해 줘.”

문득 은혜를 보며 입맛을 다시던 재수 없는 놈의 면상이 생각났다. 설마?

“너!”

녀석을 급습하여 목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커, 컥! 왜…… 이러…… 컥.”

“너 개새끼. 은혜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너는 물론 친구 새끼들까지 다 뒤질 줄 알아.”

“커억.”

“알았냐고!”

“아, 알았…….”

녀석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서서히 손을 놓고 녀석이 일어나는 것을 기다렸다. 헉헉대며 숨을 몇 번 몰아쉰 녀석은 나를 잠시 노려보고는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제길. 괜히 일만 악화되는 거 아닌가? 왜 몸이 제멋대로 튕겨 나가서…… 제길.

저벅. 저벅. 발자국 소리만이 적적한 공간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적응 된 눈 덕분에 웬만한 사물 정도는 식별할 수 있었다. 여러 반을 지나면 중앙 쪽에 화장실이 있었고, 그 옆에 바로 내려가는 계단과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말없이 녀석의 뒤를 바라보며 문득 조금 전의 일이 생각났다. 역시 내가 너무 심했나.

“아, 아까는 미안했다. 은혜는 우리한테 너무 소중한 애라 감정이 앞섰어.”

녀석은 별 대꾸 없이 걸었다. 아무래도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딱히 녀석을 달래주기도 뭐해서 묵묵히 계단을 내려가 아래층에 다다랐다. 바로 위층과 별로 다를 게 없었지만 중앙 쪽에서 미세하게 불빛이 보였다.

뚜벅. 뚜벅. 다시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며 녀석을 따라갔다. 그제야 소총과 대검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긴, 아까 같은 상황이었으면 큰 일이 났을지도 모르니…… 돌려받는 것은 역시 무리겠지?

녀석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약간 망설이며 안에 무엇이 있는지 대강 살폈다. 희미하지만 작은 불빛 덕에 안에 있는 녀석들이 몇인지, 어떻게 나를 보고 있는지 잘 보였다. 그곳에는 열 댓 명의 남자 녀석들과 다섯 명의 여학생들. 그리고 은혜가 앉아 있었다. 당장 은혜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코를 찌르는 이상한 냄새에 몸이 저절로 멈췄다.

“왜요?”

녀석은 나를 보며 요상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건 분명…… 익히 알고 있던 냄새였다. 처음 괴물이 머리를 먹었을 때 맡았었던…… 아주 낯설지만 친숙한 냄새.

“너희들 설마……?”

태성이를 옆으로 밀어내자, 구워지고 있는 익숙한 것이 눈에 보였다. 역시 내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사람의 사지가 불에 달구어지고 있는 꼴이라니…… 그렇다면 이 녀석들 모두가 괴물이란 말인가? 하지만 눈의 색이나 몸 군데군데 나있을 법한 털들이 없었다.

“왜 그래요?”

내 낌새를 이상하게 여긴 태성이 다가와 물었다. 말없이 주위를 훑어봤다. 그 중에는 나를 반기지 않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는 녀석들도 있었다. 당장은 위험을 가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너네…… 여기서 저것을 먹고 있었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사람을 먹는 게 어쩔 수 없는 거였다고?”

“저건 사람이 아니에요.”

“어?”

태성은 구워지고 있는 팔 부분을 내게 가져와 내밀었다. 역한 냄새에 금방이라도 토악질을 하고 싶었지만, 쓸데없는 분쟁은 피하기 위해서라도 녀석이 내게 내미는 팔을 면밀히 관찰해야만 했다.

“…….”

군데군데 나있는 검은 털이 내 심장을 자극하는데 충분했다.

“이, 이건?”

“네. 괴물들의 사지죠.”

“왜 이런……?”

내 말에 녀석들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직 어린 녀석들이라 그런지 기분이 그대로 드러났다. 다시 팔을 원래대로 꽂아 넣은 태성은 녀석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 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평소처럼 야자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찰나에 괴물들이 나타난 거예요.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죠. 누군가 우릴 대상으로 몰래카메라를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요.”

타닥. 타닥. 괴물들의 사지가 불을 가득 머금었다.

“하지만 아니었어요. 친구들은 거침없이 뜯어먹는 그 모습은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었죠. 도리가 없었어요. 살려면…… 살려면 어쩔 수가 없었어요. 정말 무슨 짓이든 하게 됐죠. 당장 그 괴물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 수는 너무 많았고, 쉽게 죽지 않아 친구들이 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죠.”

“…….”

“집에 돌아갈 여유 따위는 없었어요.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가족 걱정을 어떻게 해요. 그렇게 남은 우리들은 학교 창고에서 매점 음식으로 버티며 살아갔어요. 하루하루가 정말 지옥 같아서 미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창고에서 나오기로 했죠. 그리고 나왔을 땐 이미 학교는 물론 동네가 초토화된 상태였어요.”

그 기분을 잘 이해한다. 생사 고비를 넘기던 그때가 아직도 뼛속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다. 힘들었겠지. 죽고 싶었겠지.

“우린 살아갈 궁리를 해야만 했죠. 그 결과 괴물들과 비슷한 냄새를 풍기면 비교적 안전할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린 괴물들을 잡아 그 사지를 태웠어요. 성공했죠. 괴물들이 학교에 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어요.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식량문제였어요. 매점 음식들도 다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밖을 나가야 했어요. 하지만 수많은 괴물들 때문에 멀리 나가지 못했어요. 꼼짝없이 고립이 되어버렸죠. 살아가려면…….”

“소수로 활동하는 놈들을 잡아먹기 시작한 거군?”

“네. 처음엔 적응이 안됐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익숙해졌고, 후에는 고기 외에는 입에 대지 않게 되었어요.”

고기만? 다시 한 번 녀석들을 살폈다. 이상했다. 사람 같았다. 옷을 입고 있어서 그 완전한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일까. 일단 이 녀석들과 멀어져야만 했다. 오랫동안 느낀 직감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어쨌든 고맙다. 그럼 난 은혜를 데리고 갈게.”

“가다니 어딜?”

태성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소리가 난 곳을 보니 처음 은혜를 보며 입맛을 다시던 기분 나쁜 녀석이 나를 보며 서 있었다. 괜히 자극해서 좋을 것 없어. 쪽수로 불리해.

“아, 일단 여기서 지내고 내일 날이 밝으면 떠날게. 그게 너희들에게도 좋지?”

“…….”

태성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 돌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빠져나가야만 해. 이곳을…… 어서.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근데요.”

내 옆에 서 있던 태성이 은혜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왠지 이 여자…… 맛있을 것 같은데요?”

씨익. 녀석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

녀석의 말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말없이 녀석을 바라봤다. 양손은 은혜의 가녀린 어깨를 가볍게 쥐고 있었다. 녀석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상황을 살폈다.

“태, 태성아.”

하지만 은혜 옆에 앉은 여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생각조차 하기 싫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여학생들은 태성이를 두려운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그 시선을 뻔히 알고 있는 녀석은 그것을 즐기기라도 하듯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야, 박태성.”

처음 은혜에게 음흉한 눈빛을 보내던 녀석이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미쳤어?”

“아니, 정상인데.”

태성은 은혜만 주시하며 말했다. 뭔가 이상했다. 녀석이 뱉은 말과 표정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역시 위험해. 이곳은 위험해. 천천히 주위를 살피자. 태성의 돌발 행동에 이곳에 있는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쏠려 있었다. 그 틈을 타 은혜를 빼내고 싶었지만 여학생들 사이에 앉아 있어 빼내기가 쉽지 않았다. 제길…… 방법이 없는 건가.

태성은 은혜의 머리에 코를 박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모르겠어? 이 여자한테서 나는 냄새를?”

냄새…… 그 말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주루룩. 순식간에 소름이 돋았다. 우두머리와 괴물들이 내뱉었던 말이었다. 어쩌면 이곳에 있는 모든 놈들은 이미 인간이 아닐지도 몰라. 분명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뭔가…… 뭔가가 꺼림칙해.

“무슨 헛소리야 임마. 아무리 세상이 엿같이 굴러가도 그렇지.”

“…….”

“사람을 먹을 생각을 해? 너 미쳤어?”

다행히 놈은 사리분별을 할 줄 알았다. 태성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아예 양손을 잡아 뒤로 물러서게 했다. 태성은 천천히 걸음을 안타까운 얼굴로 은혜를 바라보았다.

“이상해. 저 냄새. 너희들은 모르겠어?”

“박태성!”

녀석은 태성에게 달려가 멱살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그 행동에 여학생들은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숙였고, 다른 남학생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지켜봤다.

“그, 그만해.”

“싸우지 마, 얘들아.”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차분히 녀석들을 지켜보며 기회를 봐야 했다. 지금 이때가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태성은 무미건조한 눈으로 녀석과 은혜를 번갈아봤다.

“이거 놔.”

“너 지금 이상해. 알아?”

“놓으라고.”

“진짜 너…….”

“아 씨발, 미쳤나 이게!”

순간 태성의 눈빛이 변했다. 친구를 밀쳐낸 태성은 신경질적으로 자리에 앉아 고기를 크게 베어 물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아이들도 조금씩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상황이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하지만 괴물을 먹을 생각을 하다니……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오늘 대박이었어. 내가 완전 다 쓸어버렸잖아.”

“뻥치지 마. 너는 옆에서 구경만 했잖아.”

다시 활발한 분위기를 찾은 아이들은 즐거운 얼굴로 떠들어댔다. 그 중 태성은 고기를 다 먹지 못하고 은혜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슬며시 은혜 곁에 앉아 혹시 변할지 모르는 녀석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기로 했다.

으적. 으적.

듣기 힘든 소리였다. 곧 고기를 먹어치운 한 놈이 태성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