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야?"

희진의 가게는 폭격 맞은 전쟁터 같이 보였다.
셔터가 원래부터 없었던지 복고풍으로 만든 나무 문짝은 오히려 을씨년스러워 보이고 담쟁이 넝쿨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가을 문턱에 다다라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는지 딱 귀신 들썩거릴 그런 모양새를 하고 있다.
도로변을 향한 가게창문은 언제부터 깨졌는지 가게 안은 훤히 들이비치고 어느새 도둑님들이 강림을 하셨다가셨는지
남아 있는 옷들도 몇 장 안 되어 보인다.
유리로 만들어 놓은 액세서리 보관함에도 알량한 양심으로 못 가져간 것들뿐이다.
정말로 들어가 보니 가관도 아니었다.

난 급하게 창고 문을 당겼다.
이곳도 예상과 다르진 않았지만 다행이 벽에 돈을 숨겨 놓았을 거라 생각은 못 미쳤는지 그대로다.
나는 돈 세볼 겨를도 없이 메고 있던 가방에 성급하게 구겨 넣는다.
희선은 자신이 꾸려나가던 빈티지 숍이 그야 말로 구제 그자체가 된 것이 맘이 상하는지 울적해 보인다.
하지만 나야 희선의 마음까지 위로해줄 아량은 없다.
우선 내 손에 들어온 돈을 집에 가서 세볼 욕심에 돌아오는 차안에서 룰루랄라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저번처럼 의뢰인이 나쁜 놈이라 받은 돈을 위자료로 줄 필요도 없고 이 돈은 다중이 말처럼 개 팔아 번 돈도 아니고.
으흐흐........ 근데 왜 뒷꽁지가 뜨끈뜨끈 한 것이 찜찜하지?

- 위잉~
"앞에 차량 0782,
흰색 차량 0782"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
안전벨트도 매고 있고 담배꽁초도 밖으로 안 버렸는데 왜?

젠장.
그랬다.
희선의 망가진 가게에 들어가 가방에 돈을 담고 있는 모습을 누군가 보고 신고를 한 것이다.
차량 번호를 신고했고 바로 수배가 내려져 순찰차가 따라온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하는 일이 잘 될 리가 없지.

경찰서에서 조서를 꾸미며 훔친 것이 아니고 가게 주인에게 맡겨 놓은 돈이라고 설명을 했지만 그 말이 먹힐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 돈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정당하게 내가 번 돈이니까.
결국 희선의 부모님을 불러주면 내가 설명을 하겠다고 했다.

희선의 부모님이 오시자 나는 그녀에게 들은 과거이야기들을 들춰내면서 그 자리에 돈을 숨긴 것은 나라고 확실하게
말을 했다.
하지만 역시 내말은 먹히지 않았다.
나는 겨우겨우 경찰한테 허락을 받고 수갑을 찬 채 희선의 부모와 함께 복도로 나갔다.
정말 비참한 내 신세.
은팔찌까지 차다니.
정말 울고만 싶다.

"희선이한테 제가 준 돈이 맞다니 까요."
"글쎄. 아가씨가 아무리 우리 희선이 친구라고 우겨봐야 난 아가씨를 본적이 없다니까 그러네."
"부모님한테 말씀을 안 드렸으니까 그렇죠.
희선이가 제주도로 신혼여행가서 얼굴하고 귀에 상처 입은 거 맞죠?
그리고 죽기 얼마 전 4천만 원도 빌렸구요.
그리고 또 남들에게 보이기 흉하다고 외출을 하지 않았지만, 저는 만났다니까요."
희선의 부모님도 이렇게까지 말하는 나의 말에 심중이 기우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 번 더 생각하는 눈치다.
"그런데 결혼식에는 왜?"
"일이 많아서요.
그래서 못 간 거예요.
하지만 신혼여행 다녀오고 만난 친구라고는 저하나 밖에 없어요.
그래서 망가진 얼굴도 아는거구요."
그제야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희선의 안타가운 죽음이 떠오르는지 눈시울을 적셨다.
옆에서 지켜보던 희선도 눈물을 떨어뜨리고는 내 귀에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그리고 희선이가 죽기 전에 두 분을 위해 사놓은 선물이 있는데 아직 못 드렸다네요.
아........ 조만간에 제가 직접 찾아서 뵈러 갈게요."


희선이 죽은 후에도 현수는 그 집에서 기거를 하고 있었지만 정신까지 이상해진 사위를 처음에는 맘고생이
심했을 것 같은 미안한 마음에 찾아가지 못했고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는 그놈을 만나 당신 딸이 그렇게 됐다는
원망이 앞서 찾아가볼 생각조차 안했다고 한다.
그렇게 희선의 부모까지 등장하며 설명에 설명을 거듭하고 네 시간이 넘도록 개고생을 한 후에야 내가 좋아하는
돈을 결국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묵이아저씨한테 전화부터 했다.
"아저씨. 혹시........
나와 같은 힘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거 들어본 적 있어?"
"글쎄. 흔하지 않겠지만 있지 않을까?
퇴마사 같은 경우는 생각보다 좀 있거든........"
"그럼 영매사는?
어리바리한 영매사 말고 제대로 된 영매사 말이야.
들어봤어?"
아저씨는 한참을 생각하는 듯 수화기만 잡고 있더니 기억이 났는지 말을 잇는다.
"몇 명 있다고 들었어.
내가 들어본 진짜 영매사는 모두 여자였고 .......서너 명 정도 있다고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
모두 여자라.........
여자들이 예민하고 감성적으로 풍부해서 일까?
이상한데 정말.......
갑자기 궁금해졌지만 우선 참자.
할일이 먼저지.
"혹시 말이야.
나이는 더럽게 먹어 보이는 데 나이가 삼십대 초반쯤 되는 그런 이상한 영매는 없어?"
"들어야 봤지.
다들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
능력이 꽤 있다는데 돈만 밝히고 사기까지 친단다.
자신의 이득이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다는 말도 있던데. 왜?"
"아냐. 갑자기 영매에 대해 궁금해 져서"
"몸조심해.
항상 말하는 거지만 무모한일 하지 말고.
그리고 혹여나 그 영매와 만나거든 그냥 피해.
너....... 설마,
그 영매와 얽히는 건 아니지?"
"걱정하지 마. 그런 일 없어"
묵이아저씨는 계속 신신당부를 했고 느낌이 안 좋다며 사무실로 오겠다고 하는 것을 나는 간신히 막는다.
다중이 역시 내가 통화하는 것을 들었는지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이번일이 마음에 안 든다며 연신 투덜거리고 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뭘?"
"돈도 받으셨고, 이제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렇지 돈을 받았으니 뭔가를 해야겠지.
"어디보자 지금 여덟시네.
우선은 당신네 집으로 전화를 해야겠어."
"왜 우리 집에?"
"사고 처리가 어떻게 된 것인지
당신 남편은 그 집에 혼자 있는 게 확실한 건지.
당신 시부모가 와 있으면 그 집에 찾아가는 것도 이상할거 아냐."
희선에게 집 전화번호를 묻고는 바로 번호를 누른다.

대여섯 차례 울리자 희진의 아버지가 여전히 침통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예. 안녕하세요.
아까 경찰서에서 잠깐 뵈었죠.
하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혹시 내 딸아이 선물을 찾았다고 전화한 겁니까?"
"아예. 아직, 그래서 말인데요.
희선이가 죽은 후 어떻게 자살처리가 되었는지 알고 싶어서요.
사정을 알고 찾아가야 희선이 남편이 놀라지 않을 것 같아서.
........예,........아, 예........."

희선의 죽음을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은 정체불명의 중년 여성이었다.
복도를 지나가다 크게 부서지는 소리와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며 112에 신고를 해와 경찰들이 출동했지만
벨을 눌러도 대답도 없었고 특별히 이상한 낌새가 없어 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다가 안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났고 다시 한 번 현관문을 두드려도 소용없자 구급대원들이 드릴로
도어락을 뚫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그야 말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흉측스러운 상황이었다.
현관입구부터 검붉게 뿌려진 피거품이 꾸득꾸득 말라가고 있었고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소파에는 실성한 듯 눈에 초점이 흐려진 채 뒤로 넘어갈듯 웃고 있는 현수가 있었다.
며칠 동안 씻지 않은 사람처럼 머리카락은 기름에 절어 떡이 져있고 몇날 며칠을 곡기 끊은 사람처럼 앙상하게
패인 볼은 물을 담아도 담길 것 같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본 경찰들은 현수가 마약중독이 아닌가도 의심했다.
현수는 경찰들이 들이닥쳤음을 감지하지도 못하고 음소거 되어있는 TV를 보며 입안에 허연 거품을 질질 흘려가며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경찰들은 현수를 포박을 하듯 부축해서 구급차에 실었다.
집안을 살피던 한 경찰은 욕실 문을 열었다가 기겁을 하고 말았다.
욕조는 붉은 바다를 연상케 했고 피바다위에 눈을 하얗게 뒤집고 해파리처럼 둥둥 떠 있는 희선을 발견한 것이다.
그냥 봐도 죽은 여자임에는 분명했다.
욕실 안은 시큼하고 비릿한 쇳내가 진동을 했다.
희선의 몸에는 별다른 상처는 없어보였지만 손목을 심하게 그어 내렸는지 하얗게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고 길게
벌어져 있었다.

부검의에 판단에 의하면 죽은 지 삼일이 지났다고 했다.
자살과 타살로 의견이 갈라졌지만 결국은 자살로 판명이 났다.
현수가 가장 유력한 타살자로 지목이 됐지만 정황상 앞뒤가 맞지 않았다.
현수역시 반쯤 혼이 나가 있었고 미라처럼 흉측한 몰골을 하고 경찰들에 의해 부측해서 옮길 정도로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이 아내의 손목을 긋고 자살로 위장을 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물론 희선의 부검 결과 그녀를 무기력 하게 만드는 수면제등 어떠한 약물도 발견이 안 되었다는 것도 한 몫했다.
또한 별다른 몸싸움의 흔적도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침입자의 흔적도 없고 현관 쪽에 위액과 같이 쏟아져 나온 피거품이 있었지만 그것은 희선이 넘어지면서
대리석 바닥에 부딪혀 입안이 터진 거라고 결론이 내려졌다.
순식간에 희선은 자신의 얼굴을 비관해서 자살을 선택한 여인으로 전락되어 있었다.

경찰 관계자가 병원치료를 받고 있는 현수의 부모에게 전화를 했지만 자신들은 자식이 없다고 하면서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는 통에 어쩔 수 없이 희선의 부모가 보호자 노릇을 해야만 했다.
자신의 딸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왜 하게 됐는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자신들에게 딸을 행복하게 해주겠노라며 젊었을 때 결혼하면 좋은 열 가지를 읊어대던 그 모습이 떠올라 차마 그대로
모른 채 할 수도 없었다.
희선의 부모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턱대고 자살을 선택한 딸의 행동과 정신까지 놓아버린 사위를 이해 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자신의 딸이 얼굴에 상처 때문에 사람들을 기피했고 그래서 고민을 하며 우울증 증세로 심하게 자해까지 이르렀지만
더 나은 방법을 찾지 못한 딸과 그대로 방치해둔 자신들을 원망했다.

현수는 희선이 발견 된 후 일주일이 넘도록 시체처럼 링거에 의지해 잠만 잤다.
잠깐 정신이 드는 듯 보였지만 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꿈결을 헤맸다.
일주일 후 깨어난 현수는 희선의 자살소식을 듣고 한동안 발작을 일으켜 진정제를 맞아야 했다.
의사에 소견으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했다.
극도의 충격이나 경험에 의해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이상증세를 보이는 증상들이라고 설명했고 한동안은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해야만 한다고 했다.
병원에서 2주일간 입원 후 퇴원한 현수는 심적 부담이 컸는지 희선의 부모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고
나아지면 연락을 드리겠다는 말을 하고 이 날까지 연락이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가여운 마음과 끝까지 희선을 내치지 않고 살려고 애쓴 마음이 고맙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연락한번 없는 현수가 괘씸하기까지 했고 모든 원인이 현수에게 있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들어 먼저 연락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편은 좀 지루하시죠? 나름 현재 상황을 설명해야 해서..
이번편은.. 빠른 업뎃했으니 그걸로 퉁~ .. 쿨럭~

컨디션이 꽝이라 약먹고 잠을 푹~ 자야 하는데..
사는 곳이 나름 관광지다 보니.. 날이 푸근해졌다고 사람들이 몰려 새벽까지 폭죽 터뜨리고..
상가 건물인지라 아랫층은 노래방..
뭔 대낮부터 노래방들을 찾는 건지.. 대낮 부터 새벽까지 시끄럽고.. ㅠㅠ

모두 건강 챙기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