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수정본을 올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다음번엔 꼭 신작으로 찾아뵐게요.

수정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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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오늘도 멍한 표정의 청년을 보자, 수호신은 속이 매쓰꺼웠다. 미간을 찌푸리며 원망이 한가득 담긴 표정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담당인 청년이 미치도록 답답하였다. 오죽 답답했으면 주먹만한 돌맹이를 움켜쥐어 자신의 가슴을 내려치고있다. 쓰레기 더미가 배수로를 막고 있듯이 무언가가 수호신의 가슴 한복판을 가로막아 쉬원하게 뻥 뚫려지지가 않았다. 그는 청년을 만났던 10년전 그날이후, 수호신이란 이름 아래 수없이 많고 많은 위기에서 그를 구해내었다. 압사, 질식사, 낙사, 사고사 등등.. 별 빌어먹을 놈의 운을 가진 녀석인지,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건에 휘말렸다. 하지만 수호신은 그것이 단지 청년의 운따위가 아닌, 다른 것의 관련이 더 깊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매일 뒤에서 10년을 보아왔으니 당연히 알법하다. 다름아닌 주위력. 청년은 무척이나 수호신을 의지하고 있는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나 주위력이 없는 것인지, 단 한번이라도 주변을 둘러볼 생각을 하지않았다. 그저 멍하니 앞만 바라보며 길을 걸었다. 옆에서 차가 횡하니 지나가든, 건물이 무너지든,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든, 흉기를 든 강도가 설치고 있든지 말든지 덤덤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다. 어떻게보면 겁을 상실한것처럼 보이지만, 무뇌아 같이 생각이 없는 녀석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하니 청년의 담당인 수호신이 오죽 답답할만 하다. 심지어 매일같은 청년의 모습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였다. 수없이 이뤄지는 반복의 연속. 인형뽑기처럼 재미로 위기현장에서 빼내어지는 것이 아니다. 눈코 뜰새 없이 청년을 주시하여야했고,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사고에 가슴이 조마조마 하였다. 그는 부단한 노력의 결실로 현재까진 무사히 청년을 지켜내었다. 하지만 자신이 잠깐이라도 방심한다면, 청년은 순식간에 이세상을 떠나버릴지도 몰랐다.



수호신은 수천 수만번을 포기하고 싶었다. 자신과는 전생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청년을 목숨걸고 수호해줘야하는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허나 수호신이란게 원래 그러하다. 사회에도 법이란게 존재하듯이, 수호신들에게도 자신들만의 법이 존재한다. 가히 높디 높으신 신께서 임의로 정해준 한사람에게 수호신은 평생을 매달려야했다. 수호신은 자신의 담당이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지켜주는것이 임무였다. 켤코 사고사로 사망하여서는 안되었다. 만일에라도 그렇게 된다면 수호신 법의 어긋나, 크나큰 벌을 받게되었다. 물론 지금의 수호신도 그 벌의 무시무시함을 알고있다. 그러하니 별 수가 있겠는가? 자신의 뼈가 깍이는 한이 있더라도 청년을 구해내어야만 수호신 법의 어긋나지 않는 것이였다.



오늘 또한 수호신에게 크나큰 시련이 닥쳤다. 매일같이 오는 시련이였다. 새빨간 불을 밝게 비추고있는 신호등이 견고하게 서있음에도, 청년은 주저하지 않고 도로를 건넜다. 그런 그의 뒤에선 수호신이 한숨을 내쉬고있다. '포기하고싶다.' '그냥 쳐 죽도록 내버려 두고싶다.' 잔인한 생각이 수호신 머리를 빙빙 맴돌았다. 허나 그러한 생각도 잠시, 고개를 가로 저으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수호신은 자신의 도움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였지만 어찌나 박복한 인생의 청년이였는지, 꾸벅꾸벅 졸음 운전을 하고있는 기사가 그 도로로 다가오고있었다. 그것을 목격한 수호신은 머리털이 솟구치는걸 느낄수 있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졸음 운전을 하고있는 기사도 기사이지만, 조심성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아볼수 없는 청년의 모습에 화가 난 것이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주변을 둘러본다면.. 아니, 유치원생 때부터 배워온 기본적인 규칙을 지켰다면 이러한 일은 결코 쉽사리 다가올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원망만 하고있을때가 아니였다. 그 빌어먹을 수호신법 때문에 몸을 날린다. 수호신은 성큼 다가가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차를 막아 섰다. 그리곤 두 손바닥을 펼쳐 다가오는 차를 향해 힘껏 뻗었다. 이내 차의 표면이 수호신의 손바닥과 만남을 이루었다.


- 끼이이이익!


엄청난 마찰음과 함께 시멘트 바닥이 까맣게 바퀴 자국으로 물드면서 급격하게 속력이 줄어갔다. 수호신은 이를 악물며 어떻게서든 차를 막아세우려 노력했다. 그런 그의 노력이 꽃을 피워 가까스로 청년의 앞에 설수있었다. 수호신이 없었더라면, 청년은 도로위에 처량한 고양이 시체처럼 납작하게 짓눌려 모든 내장이 터져버린채 생을 마감하였을 터이다. 하지만 수호신의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오늘도 청년은 험한꼴을 면할수 있었다.


졸던 운전기사는 갑작스런 청년의 출현과 차를 막아선 미스터리한 힘때문에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을 괴롭히던 수면욕은 어느새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후였다. 기사는 잠시동안 멍하니 지나가는 청년을 바라보더니 이내 창문을 열어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그리고는 입에 담지못할 온갖 욕짓거리를 해대었다. 하지만 청년은 그의 말이 들리는지 마는지 눈하나 깜빡 안하고 가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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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찬 비바람이 일던 어느날, 청년은 손에든 따듯한 커피를 한모금 들이키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침대위에 누워있던 수호신은 방 문을 통해 들어온 냉담한 공기에 몸이 시린걸 느꼈다. 가뜩이나 갑작스레 쏟아진 폭우에 체온이 많이 떨어져있던 수호신은 차가운 표정에 청년을 보자 온몸에 오한이 일었다. 청년은 책상위에 커피를 올려놓은뒤 의자에 앉았다. 침대와 청년이 앉은 의자 사이엔 얼음으로 만들어진 장벽이 생긴듯 어색하고 써늘한 기운만 감돌았다. 방 안은 순식간에 침묵으로 뒤덮혀, 중간중간 청년이 커피를 홀짝이는 소리가 부각되어 듣기 싫은 소음처럼 느껴졌다.


"이봐 수호신. 질문좀 해도 될까?"


차가운 얼음 장벽을 먼저 두드린것은 청년이였다. 게다가 질문이라니? 수호신은 10년동안 그와 지내왔지만 그는 단 한번도 자신에게 질문 같은것은 하지않았다. 갑작스런 청년의 물음이 별것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수호신에게 만은 묵직한 그 무언가로 다가왔다.


"그래, 해봐."


청년은 초조한듯 연신 커피를 들이켰다. 눈알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여 갈팡질팡 하였다.


"수호신이란.. 한 사람당 하나씩 붙어있는 것이냐?"


질문을 받은 수호신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 두어번 저었다.


"그렇지 않아. 한 백만명중에 하나 꼴이랄까? 그만큼 너는 커다란 행운을 거머 쥔것이야."

"행운이라.. 그렇다면 수호신은 자신이 맡은 사람 이외에 다른 사람은 구할수 없는 것이냐?"

"그래. 그건 너의 말이 맞아. 만에 하나 다른 사람을 구한다면 그것은 수호신 법에 어긋나는 일이지. 그렇다면 신께서 어마어마한 엄벌을 내릴 것이야."

"그래?"


또다시 둘은 침묵하였다. 하늘에선 구멍이 뚫렸는지 굵은 빗방울이 쉴새없이 창문을 두드렸다. 그럴수록 둘 사이에 써늘한 기운이 고조되어만 갔다.


"질문은 이것으로 끝인거냐?"


긴 침묵에 답답했던 수호신이 물었다. 그러자 청년은 대꾸 없이 책상위에 올려놓은 커피잔을 움켜 쥐었다. 그런 그의 손이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미묘한 떨림에 잔 속에 커피가 잔잔하게 흔들렸다. 살랑살랑한 물결이 점점 거세어 지더니 이내 쓰나미처럼 크게 요동쳤다. 청년은 순식간에 의자에서 박차고 일어나 방 문을 열고 나갔다. 그순간 나지막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씨발……"


##


어느덧 침울했던 먹구름이 걷히고 따스한 햇살이 수호신을 반겼다. 모처럼에 맑은 날씨에 기분이 좋아진 수호신은 오랜만에 날개를 펼쳐 하늘로 비상하였다. 그의 날개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부드러운 솜사탕처럼 푹신한 깃털이 빽빽하게 붙어있었다. 햇살이 날개 속으로 스며들자, 밝은 금빛색으로 물들어 그것의 아름다움을 더욱더 부각시켰다. 그렇게 수호신이 날개를 펼쳐 날수있는 하늘은 그에게 잠시동안에 자유로움을 줄수있는 최고의 안식처였다.


자유로움을 만끽하던 수호신은 자신의 눈에 비친 그것처럼 심장이 흔들렸다. 간밤에 새찬 비바람 때문이였을까? 5층 높이에있는 커다란 간판이 금방이라도 떨어질듯 흔들리고있었다. 수호신은 침착하게 지상을 내려다 보았다. 그순간 갑자기 울린 휴대폰 진동처럼 수호신은 몸서리 쳤다. 다름 아닌 청년이 그 간판밑으로 향하는 중이였다.


"야! 멈춰!"


수호신은 다급하게 외쳤지만 무뚝뚝한 청년이 들어줄리가 만무했다. 간판에선 '투두둑'하며 전선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눈짐작으로 보아 자신이 감당할만한 간판에 크기가 아니란것을 알았다.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와있던 수호신에겐 그저 고함을 치는것이 최선의 방법이였다.


"제발 멈춰라고!"


- 투두두두둑!


엄청난 굉음과 함께 결국엔 간판이 고개를 숙여 고공 다이빙을 하였다. 수호신은 짧은 탄성을 내지르며 간판에 낙하지점에 서있는 청년을 보았다. 그는 공기를 박차며 힘껏 몸을 날렸다. 자신이 감당치 못할 간판이란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년또한 마찮가지였다. 그에겐 감당하기 벅찬 인간이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오지 않았던가? 수호신은 그러한 자신을 믿어보았다. 그어떤 것일지라도 청년보다 감당하기 벅찬것이 있겠는가?


"으으윽..."


빛의 속도로 달려온 수호신은 재빨리 간판 밑으로 스며들어가 그것을 떠받쳤다. 최대한이라도 버틸수 있게 어깨로 그것을 막아 세웠다. 하지만 예상처럼 벅찬 상대였다. 낙하산을 펼친듯 떨어지는 속력이 급격하게 줄었지만 느릿하게 나마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수호신은 확신했다. 청년이 피신할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버텼노라고. 그 힘든 상황에서도 수호신은 꾸역꾸역 고개를 숙여 밑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멀뚱이 자신을 쳐다보고있는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수호신은 황당함을 금치 못하였다. 재빨리 피해도 쉬원찮을 차에, 저게 무슨 짓인가?


수호신은 더이상 버티기가 버거웠다. 어서 청년이 달아나길 바라였지만 그는 한발짝도 꿈쩍하지 않았다. 간판은 어느새 지상까지, 그러니까 청년의 머리 위 근접한 곳까지 다다랐다. 이상태로라면 청년은 간판에 짓눌려 죽어버릴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니 수호신은 차라리 간판으로 그를 내려 찍어버리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였다. 속 쉬원한 답변이였다. 그토록 지긋지긋하던 청년을 간판으로 찍어버려 지점토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최고의 답변이였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가로 지르는 것이있었다. 바로 수호신법. 또다시 지랄맞을 그것이 떠오르니 망설이게 된다.


신께서 내리실 엄벌에 두려움이 수호신을 옥죄었다. 상상 이상에 고통.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러 그것을 받아드리기엔 너무나도 커다란 벌이였다. 수호신은 다시한번 숨을 고른다.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생각을 바로 잡아본다. '청년은 나에게 소중한 존재이다.'를 수십번 되뇌이며 자신 스스로의 위안을 삼켰다. 그리고는 두눈을 찔끔 감아 순간적인 힘을 주었다. 근육이 수축되며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간판을 들어올렸다. 팔이 끊어질듯 요동쳤지만 수호신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끝내는 간판을 옆으로 밀어버릴수 있었고, 청년은 목숨을 부지할수 있었다.


수호신은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이처럼 큰 힘을 사용한적은 없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보람차다. 수호신은 여전히 '청년은 나에게 소중한 존재이다.'를 되뇌이고 있었다. 처음 시도해보는 위안법이 생각보다 큰 효과를 주었다. 지금같은 심정이면 그어떤 고난 속에서도 청년을 구해낼수 있을것만 같다. 수호신은 뿌듯한 표정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청년의 냉담함은 여전하였다. 아니 극에 달해있었다. 표정에서 고마움이 전혀 묻어나질 않았다. 이윽코 한발짝을 내밀어 가던 길을 걷는 청년에게서 수호신은 역겨움을 느꼈다. 그의 콧방귀를 뀌며 비웃는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수호신은 뇌가 끓고 있음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머리 뚜껑이 열려 그 속에 내용물이 흘러 넘칠것만 같았다. 그만큼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방금 청년의 표정은 냉담함 이상에 하등 생물을 보는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목줄을 매달아 질질 끌고 다니는 생물처럼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수호신은 느꼈다. 자신은 그에게 있어서 그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뒷꽁무니만 따라다니는 생물에 불과했다. 그 이하는 몰라도 그 이상은 결코 아님을 알았다. 그때 수호신의 머리속을 맴돌던 위안법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청년은 내 인생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이다.'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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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는 말 한 마디가 그렇게나 어려운 것이냐?"


마지막이였다. 수호신은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였지만 이성적으로 물음을 하였다. 그런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부디 고맙다는 한 마디가 청년의 입에서 흘러 나오길 간절하게 빌었다. 그럼 모든것을 용서해줄 자신이 있었다. 지금 이순간만은 갈대가 되어 그의 말 한 마디에 이리저리 흔들릴수 있는 수호신이였다. 이윽코 청년이 입을 열자 갈대는 한 방향으로 사정없이 꺽여 버렸다.


"내가 왜 고마워 해야하지?"


청년은 정말 이유를 모른다는 표정이다. 괘씸하다. 너무도 괘씸하였다. 수호신은 하마터면 주먹을 뻗을뻔 하였다. 그는 애써 진정하며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억지로 열었다.


"왜… 왜 고마워 해야 한다니…? 그걸 진정 몰라서 묻는 것이냐? 너… 너란 녀석은 말이야… 나란 존재가 없었으면 벌써 이세상에서 사라지고도 남았어! 그거 알아? 벌써 수십번도 죽었을꺼란 말이다!"


수호신은 흘러 넘치는 분을 참지못하고 소리를 쳤다. 하지만 이후에 청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가히 충격적이였다.


"내가 언제 구해달라고 했어?"

"뭐… 뭐, 뭐?"


수호신은 황당함에 표정 관리가 전혀 되질 않았다. 핏줄이 실룩실룩 거리며 금방이라도 터질 기세였다.


"내가 구해달라고 한적 없잖아? 그게 니 일이라며? 정 싫으면 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하지만 그렇다면 니가 말한 엄벌은 받을테지만."

"비… 빌어먹을…"


수호신은 허탈함에 고개를 숙였다. 너무도 망연자실하였다. 자신이 이때까지 쌓아온 공든탑이 무엇인가? 순식간에, 그것도 너무나도 쉽게 와르르 무너져 내려버린다. 그에게선 모든것이 빠져나갔다. 자신의 삶에 이유. 청년에게 모든것을 쏟아 부었던 미련하고 멍청한 자신의 모습이 하염없이 머리속에서 수영을 한다. 그래도 자신은 열심히 할 일을 해왔다고 여겼다. 하지만 왜? 도데체 왜 청년은 그런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다른 수호신들의 말로는 모든 도움 받는 사람들이 고마움을 느낀다고 들었다. 사실 그게 당연한 것이다. 일부로 돈들여 가입하는 일반 보험보다도 훨씬 값진 보험을 들어 놓는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수호신이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수호신들은 오로지 주기만 한다. 하지만 도데체 청년은 왜……


커다란 혼란에 소용돌이가 일어 모든것을 빨아 들이고 나서야 바닥에선 한 가지에 결론이 드러났다. 자신의 머리속을 맴돌던 그 생각. 하얀 천에 검정색 물감이 번지듯 그 생각도 점차 번져 어둡게 변해만갔다.


'청년은 내 인생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이다. 고로…… 죽여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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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결정이 내려지니 모든것은 순탄대로였다. 사실 수호신에게 이러한 일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였다. 청년이 자고 있는 새를 틈타, 집안에 불을 질렀다. 왜 굳이 불을 질렀냐면 수호신은 죽음의 강도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죽음중에서 불에 타들어가며 죽는것이 가장 고통스럽다. 수호신은 그러한 고통을 청년에게 마지막 선물로 전하고 싶었다. 활활 타들어가는 집을 보니 오랫동안 가슴 깊은 곳에 숨어있던 환희가 꽃피어 났다. 수호신은 참지 않았다. 마음껏 웃었다. 누군가에 생일이였다면 지금 앞에 있는 화염을 바라보며 생일축하 노래라도 불러주고 싶은 심정이였다.


반면 잠들어 있던 청년은 갑작스런 온기에 잠이 깨었다. 주변에 펼쳐진 환한 불길을 바라보자 무엇인가 스멀스멀 자신의 몸을 기어오르는 느낌이 든다. 플래쉬가 터지듯 짧은 기억들이 번쩍였다. 그 기억들이 퍼즐처럼 제자리를 찾아간다. 한 조각 한 조각… 퍼즐이 맞추어 질수록 청년은 참을수없는 고통을 느꼈다. 잊고 지내려 애썼던 기억. 청년은 고함을 치며 머리를 크게 흔들었다. 최대한 퍼즐이 맞춰지지 않도록 필사에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퍼즐을 맞추는 청년의 뇌는, 그를 무시한채 완성품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는 눈앞에 펼쳐진 불길이 스크린이 되어, 짜 맞추어진 빌어먹을 10년전 기억을 상영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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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그것은 그저 어린아이의 작은 장난일뿐이였다. 그것은 그저 어린아이의 작은 호기심일뿐이였다. 그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작은 불씨에 불가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건물이라는 영양분을 흡수에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내 어마어마하게 자라버린 그것을 어린아이는 막을수가없었다.


애초에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처리하려 했던게 실수였다. 작은 불씨에 불가하였을때 부모님께 알렸어야 했다. 하지만 어린아이에 판단력은 너무나도 흐렸다. 그가 허둥지둥 거릴 무렵 어느새 작은 불씨는 온집안을 덮쳐버릴 정도로 거대해져 있었다.


나무로 된 기둥이 타들어 갔다. 커텐과 책상. 모든 사물로 옮겨가는 불은 어린아이를 위협했다. 금방이라도 삼켜 버릴듯이 크게 입을벌려 아이에게 접근하였다. 그순간 아이의 부모님이 달려왔다. 그들도 위험한건 마찮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를 포기할수 없었다. 자신들의 사랑에 결정체인 그를 놓고 갈수는 없었다. 그래서 달려들었다. 아무 안정장비 없이 몸을 날렸다. 방안으로 들어서 아이의 손을 붙잡으려는 순간, 타들어가던 나무 기둥이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는 아이의 부모님들을 깔아 뭉개었다. 아이는 슬펐다. 모든 사물들 처럼 불의 영양분이 되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이 슬펐다. 그래서 눈물이 흘렀다. 아이는 부모님을 애타게 외치며 많은 양에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지만 그것이 이미 커질대로 커버린 이 화재를 꺼버리기에는 턱도 없었다.


그순간 수호신은 신의 명을 받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타들어가는 집을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처음 임무부터 고달픈 일이였다. 하지만 어쩔수 없이 쓰러지는 불기둥을 해치고 집안 내부로 깊숙히 들어갔다. 지글지글 타들어가는 소리를 뚫고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수호신은 자연스레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곳엔 타들어가는 시체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고있는 어린아이가 덩그러니 있었다.


수호신은 단번에 그 아이가 자신의 담당이라는 것을 알았다. 서서히 아이에게로 다가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놀란눈을 뜨며 아이가 수호신을 바라보았다.


"누…누구세요?"

"지금은 그런걸 설명해줄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일단 나가자. 나가서 천천히 설명해줄테니."


수호신은 강력히 아이의 손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아이는 망설이듯 힘을 주어 버텼다.


"저희 엄마, 아빠는요?"


수호신은 아이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힘으로 아이를 화염속에서 끌고 나왔다. 나오는 중간중간 쓰러지는 기둥과 불길들이 둘을 위협하였지만, 수호신은 쉽게쉽게 그것들을 저지하며 나올수 있었다. 이내 뜨거운 열기속에서 탈출한 아이에게 쉬원한 바람이 맞이하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아이는 불길속을 미련하게 바라보며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런 그의 눈물로 바닥이 흥건하게 젖어버린다.


##


불길은 순식간에 커져만 갔다. 이곳저곳 번져가서 이미 집안은 화염의 구렁텅이가 되어버렸다. 그런한 모습을 청년은 실성한듯 바라보았다. 죽음의 위기에서 청년은 웃고있었다. 그순간 불기둥이 쓰러지며 청년의 옷깃을 스쳤다. 그러자 옷깃엔 불이 붙었고, 그것은 옷을 영양분 삼아 거침없이 커져갔다. 순식간에 옷을 먹어버린 불은, 이윽코 청년의 몸뚱아리를 집어 삼키기 시작하였다.


"으하하! 뜨거워! 뜨거워 미치겠다구! 으하하!"


청년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두려움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듯 보였다. 불이 청년의 몸을 잘근잘근 씹어가자 살을 애는 고통이 청년을 옥죄었다. 하지만 그 고통속에서도 청년의 괴기스러운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으하하하!"


잠시후 불길은 청년의 모든것을 앗아간채 시들어갔다. 심지어 청년의 몸뚱아리 조차도 말이다. 작은 불씨가 더이상의 영양분이 없다는것을 깨닫고는 점차 모습을 감추었다. 한차례 불길이 휩쓴 자리에는 까만 잿덩이들만이 남아있었다. 청년의 몸뚱아리도 새까맣게 변하여 빛을 잃었다.


그순간 청년의 몸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는 스멀스멀 몸안에서 무엇인가가 나오고 있었다. 환하게 발광하고 있는 그것은 청년의 영혼이였다. 몸뚱아리는 빛을 잃었지만 청년의 영혼만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영혼앞에는 하늘까지 이어진 길고긴 계단이 펼쳐졌다. 청년은 본능적으로 계단을 올라섰다. 한 발짝 한 발짝… 푸른 하늘을 향해 청년은 쉴새없이 계단을 올랐다. 이윽코 집안을 빠져나오자,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청년은 계속해서 오른다.


"으하하하! 꼴 좋구나! 꼴 좋아!"


그순간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청년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리우는 곳을 보았다. 그곳엔 수호신이 배꼽을 움켜쥔채 웃고있었다.


"하하하하! 어떠냐? 불은 내가 지른것이야! 이게 바로 나를 무시한 대가인거지! 까짓꺼 신께서 내리는 벌따위야 받아버리지 뭐. 하지만 도저히 너란 녀석과는 지낼수가 없었어. 10년이란 세월을 버텨낸 내가 용할 지경이라구. 그렇지만 더는 못해. 이제 너란 놈은 질색이란 말이다. 알겠어? 푸하하!"


수호신은 계단을 오르는 청년의 모습이 너무도 통쾌하였다.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것들도 몽땅 사라져버렸다. 속이 쉬원해 그 무엇도 없는 것 같다. 가슴이 그냥 비어있는것만 같다. 통풍또한 잘되어 빈공간을 매운 공기또한 깨끗하였다. 분명 그러했었다. 청년의 표정이 변하기전까진 분명…


수호신은 그가 그러한 표정을 지을수 있을지 몰랐다. 단 한번도 보여준적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지중지하는 꿀단지 처럼 청년은 그러한 표정을 얼굴속에 숨기고 살았다. 이윽코 개방한 그것은 너무도 행복한 표정이였다.


수호신은 혼란에 빠졌다. 이유를 당최 알 방도가 없었다. 지금 상황에 왜? 무엇때문에 저렇게 행복한 표정을 이러한 상황에 닥쳐서야 보여주는지를 알수가 없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머리털이 빠지듯이 고뇌하고 또 고뇌하였다. 수호신은 흔들리는 눈알을 고정할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야에 비친 청년의 입은 시원한 답변 대신에 더욱더 강한 의문감만을 남겨주었다.


"고맙다……"


분명 수호신에게 하는 말이였다. 자신을 죽인 수호신에게 내뱉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였다. 수호신의 혼란은 점점 극심해져만 갔다. 가치관까지 몽땅 뒤집어 엎어버렸다. 상식적으로 전혀 이해가 가질 않는 상황에 어이없는 표정만 연신 지었다. 그토록 듣고 싶어했던 고맙다란 말을 왜 이제서야 듣게 되는지를 도통 알지 못하였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칭찬이지만 전혀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다. 비꼬는 것처럼 들릴 뿐이다. 하지만 청년의 표정이 그것 또한 아니다라고 답해주고있다. 진심으로 고마움을 담고있었다. 환한 표정엔 평소에 자신을 대하던 냉담함 따윈 찾아 볼수가 없었다. 한없이 고마움만을 담고있었다.


청년은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계단을 올랐다. 그모습에 수호신은 안절부절 하였다. 이게 아니였다. 자신이 원하던건 고맙다는 말 따위가 아니였다. 원망… 수없이 자신을 원망하기만을 바라였다.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질 않았다. 화가 솟구 친다. 끝까지 자신을 조롱하는듯한 청년의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이 개쎄끼가!"


수호신은 단숨에 청년에게로 다가가 목을 두손으로 휘감았다. 그리고는 힘을주어 졸랐다. 손가락 하나 하나가 청년의 목살을 파고들었다. 그러자 청년의 얼굴에 핏빛이 감돌았다. 고통스런 신음소리또한 흘러나왔다.


"끄…어어…억…"

"씨발! 내가 불을 질렀다고! 내가 너란 놈을 죽였단 말이다! 그런데… 지금 고맙다는 말이 왜 나오는거야! 이유가 뭐야? 이유가 뭐란 말이냐!"


청년은 숨이차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또다시 미소를 띄었다. 그러자 수호신은 맥이 풀려 손에서 힘이 빠지는걸 느꼈다. 이윽코 목을 조르던 손이 풀리자 청년은 헛기침을 두어번 한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고맙다는거야."

"아…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도데체 왜 고맙다는거냐! 지금 너한테 바라는말은 그딴게 아니란 말이다! 날 원망해… 날 원망해란 말야 이 미친자식아!"

"하하하… 수호신. 미안하지만 날 널 원망할수 없어. 왜냐하면 난 지금 너에게 너무나도 값진 선물을 받았으니 말이야."


수호신은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허탈감과 공허함이 수호신을 멍하게 만들었다. 주체못할 눈물 방울도 흘러 내리기 시작하였다. 청년은 그러한 수호신을 두고 계속해서 계단을 올랐다. 수호신은 눈물이 자신의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지만, 그것은 뚜렷하게 보였다. 자신이 목을 졸라서 만들어진 자국이 보였다. 그순간 자신의 목을 감고있던 무언가도 풀리는것이 느껴졌다. 항상 자신의 목을 동여매어 옴짝달싹 못하게했던 그 줄. 그것이 풀리는것을 느꼈다. 자신은 청년에게서 자유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알았다. 목에 줄을 매달고 있던것은 자신만이 아니였다는 것을. 자신의 목줄을 잡고있던것은 청년의 손이 아닌 청년의 목이였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수호신과 청년은 바라보는 방향이 달랐다. 그리고 뒤를 바라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목줄을 잡고 있는것이 손이였는지, 아님 그 자의 목이 였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서로가 목줄을 매어 그 것이 한줄로 연결이 되어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만 갔다. 그러자 서로의 목이 조여지며 숨이 차오른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붙잡고 자유를 주지 못하였다. 벗어 나고 싶었지만 미련하게 자신만의 길을 보며 서로를 당겼을 뿐이였던거다. 그렇게 10년이란 세월이 흐른후, 수호신이 처음으로 자유를 위해 목줄을 불로 태웠다.


수호신은 청년을 위해 삶의 길을 걷고자 하였다. 하지만 청년은 그것을 바라고 있지 않았다는걸 깨달았다. 청년이 바라는것은 삶의 반대 방향인, 죽음….


청년은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하늘 끝까지 다다랐다. 그러자 하늘에선 작은 틈새가 벌어지더니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틈새는 점점 크게 벌어져 청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청년의 눈에는 벌어진 틈새사이로 너무나도 그립던 그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엄마… 아빠…"


청년은 지금까지 자신을 가로막던 죄책감이란 벽을 힘차게 부수었다. 그리고는 그들을 만나러 간다.


"하하하… 수호신… 날 놓아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