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악식（惡食） 中

눈을 떴을 때 내가 본 것은 더럽고 습기찬 지하실의 천장이었다. 난 뒤죽박죽으로 뒤엉킨 기억의 실타래를 붙잡고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를 생각했다. 어렵지 않게 마지막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진 않았다. 그동안 내 몸을 팽팽하게 조이고 있던 밧줄의 감촉도 더 이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감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얼마간 기다려 보았지만 끝내 택시기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온 몸의 관절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새어 나왔다. 난 마치 좀비라도 된 것 처럼 흐느적 거리며 지하실을 빠져 나왔고, 망막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잠시 눈쌀을 찌푸렸다.

"빌어먹을..."

행인들의 시선에 담긴 혐오감을 애써 무시하며 집으로 돌아오자 처음 나갈때와 전혀 달라진 것 없는 집안 풍경이 잔뜩 먼지를 쌓아둔 채 날 반기고 있었다. 허물을 벗듯 옷을 벗어던진 난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가장 먼저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떨어져 내리는 뜨거운 물줄기가 피부를 부드럽게 두드리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적당히 따뜻한 물이 심신의 피로를 씻어주었다. 19살 이후로는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서럽게 흘러내렸다. 비좁은 욕실에서 내 흐느낌은 좀처럼 멎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난 도무지 밥을 먹을수가 없었다. 마치 밥알이 바퀴벌레의 알집같다고 생각했다.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들면 접시 위에서는 분명히 오이무침이었던 것이 어느새 동그랗게 몸을 웅크린 구더기가 되었고, 찌개 속엔 지네와 파리 따위가 둥둥 떠다녔다. 내 강박관념은 점점 더 심해졌고, 결국 물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먹지못해 차츰 말라가던 내 모습은 가죽만 앙상하게 남아 마치 에티오피아 난민처럼 변해버렸고, 움푹 들어간 눈두덩이와 대조적으로 튀어나온 광대뼈의 모습은 거울속의 내 모습을 혐오스럽게 비춰주고 있었다.

"배고파..."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면서 난 어쩌면 내가 굶어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벌레 따위가 잔뜩 기어다니는（혹 그게 착각이라고 해도） 음식엔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며칠째 아무것도 공급받지 못한 내 위장은 위산으로 자해를 하며 집요한 위통으로 날 협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사사사삭

그러던 어느날 허기에 지쳐 방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내 눈앞으로 갈비 한덩이가 빠르게 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갈비가 기어가다니?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그건 역시 갈비였다. 난 주저없이 손을 뻗어 갈비를 집어들었다. 통통한 살코기가 먹음직스럽게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군침을 삼키며 입안으로 털어넣자 입안가득 퍼지는 달콤한 갈비맛이 내 혓바닥을 매료시켰다. 이젠 먹을 수 있다.

그리고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집안 곳곳에서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연이어 발견되었던 것이다. 초밥, 장어구이, 삼겹살, 무말랭이, 번데기, 오징어무침 등을 비롯해서 그야말로 없는게 없었다. 난 신이나서 그 모든 것들을 잡아먹었다. 역시 굉장히 맛있었다. 하지만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음식들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동이나 버렸던 것이다. 난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는 초밥으로 주린배를 채웠지만 그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내 간절한 바램 덕분인지 얼마지 않아 난 굉장한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곳엔 온갖 종류의 산해진미가 믿을 수 없을만큼 많이 보관되어 있었다. 난 너무 감격스러운 나머지 하마터면 어린아이 처럼 소리내어 울뻔했다. 걸신들린 사람처럼 음식을 허겁지겁 입에 쑤셔넣었지만 마르지 않는 샘처럼 음식은 끝이 없었다. 근처에서 내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꼬맹이 하나가 갑자기 구역질을 하더니 비명처럼（그건 분명히 비명이었다） 울면서 어딘가로 마구 달려가 버렸다. 잠시후 포만감을 느끼며 부른배를 쓰다듬고 있는 내 앞으로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달려왔다.

"저 사람 맞니?"

"으아앙. 저 아저씨 맞아요."

자세히 보니 울면서 사라졌던 꼬맹이도 함께였다. 그들은 나에게 다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두리번 거리며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말 당신이 여기 있는 걸 먹었나요?"

"아, 죄송합니다. 주인이 있는 건가요? 너무 배가 고파서 그만..."

내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하자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를테면 유에프오를 봤다던가 했을 때 짓는）으로 날 보며 재차 말을이었다.

"당신 미쳤어?"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허락없이 먹은건 미안하지만 변상해 드리면 되잖아요. 에이 ㅆㅣ발."

그가 더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계속]